중세 시기는 사람들이 유럽 각지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관습과 패션, 문화, 기술을 접하면서 발전하게 됩니다. 고대로부터 시작된 것들이 르네상스 시대로 이어지기 전까지의 복식문화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중세 복식문화의 의의를 알아보고 이때 나오기 시작한 기술과 갑옷을 살펴보겠습니다.
중세 복식문화의 의의
유럽의 중세 복식 문화는 중세 시작에는 고대 그리스·로마 복식과 게르만 복식 문화가 융합된 형태를 하고 있었으나, 점차 변화를 이루어 18~19세기까지 이어지게 된다. 로마의 붕괴 이후 중세 초기에는 이미 토가를 점차 착용하지 않았으며 대신 튜닉을 많이 입게 되었다. 게르만 복식문화의 영향과 기독교의 전파는 튜닉의 발달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튜닉은 길이는 밑단이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어졌다. 하지만 동서 대분열이 있으면서 동유럽과 서유럽의 복식 스타일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중세 중기이후에는 동로마의 경우 아시아에서 온 유목민들과 영향으로 복식에도 영향을 받아 10세기 궁정 의상에 호복을 입기 시작했다. 11세기에 들어서면서 복식의 동방적 색채가 더 강해지게 되었고, 11~12세기 이후 중세 후기로 갈수록 점차 오스만 튀르크의 세력이 커지면서 멸망하기 전까지 투르크의 영향을 복식에 많이 받게 된다. 황제들이 썼던 모자는 몽골의 투르크식 모자였으며, 지리적 및 종교적으로 가까운 동유럽권 국가들도 영향을 받게 되었다. 서유럽의 경우 동로마를 통한 교류로 비단이 다시 수입되어 의상이 화려해지기 시작했다. 남성용 튜닉의 경우 밑단이 짧아졌으며, 중세 초까지 길이가 길었던 바지인 브레가 현제의 사각팬티 정도로 짧아지면서 양말 격이었던 호스가 점차 길어져 팬티스타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쇼스로 변하게 된다. 중세시대는 도시가 아닌 농촌사회를 기반으로 한 봉건제와 농노제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로마시대 이후에도 근대까지 노예들이 있었다.
의복 기술
비단(6세기)
기원전 1세기 로마 공화정 시기에 비단이 유럽에 알려졌지만, 당시 비단을 만드는 주재료인 누에나방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한나라가 금지했기때문에 중국이 비단 공급을 독점하고 있었다. 동로마 제국시대에 이르러서야 누에나방이 해외로 유출되어 유럽에 비단이 최초로 생산되었다. 11세기에서 12세기경에는 이탈리아에 비단의 생산방식이 도입되어 피렌체 공화국,베네치아 공화국, 제노바 공화국, 루카 공화국이 비단 생산지가 되었다. 스페인과 프랑스에 15세기경에 누에나방과 비단제조법이 전파되어 프랑스에서 리옹 지방과 스페인에선 발렌시아와 그라나다 지방이 비단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비단의 제조에는 수차라는 비단 사용기계가 사용되었습니다.
베틀(11세기)
원단을 짜는 베틀은 수직형 배틀(warp-weighted loom)이 있었다. 이 수직형 배틀(warp-weighted loom)은 전통적으로 신석기 시대 때 중부 유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 drawloom이 중동을 거쳐 들어왔고, 태피스트리가 발달함에 따라 더 개량된 배틀(haute-lisse loom)과 하네스를 조절하는 발판형 페달이 달려 있는 직조기(basse-lisse loomm)가 나타나게 되었다. 베틀의 발전으로 원단 제조에 많은 영향을 주어 더 많은 원단을 생산해 낼 수 있는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단추(13세기)
고대의 단추는 옷을 여미기 의한 것이 아닌 일종의 장신구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었다. 옷을 여미는 진정한 의미의 단추는 13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이전까지의 단추의 재료들이 금·은·보석과 같은 값비싼 재료들이나 공정을 통해 만들어졌기에 상당히 비싼 사치품에 속해 있어 19세기까지의 단추는 평민들에게 금지되어 있었으며,귀족이나 왕족의 계급에게서만 나타났다. 그나마 16세기경부터 군복에 뼈로 만든 단추가 달린 상의가 나오기도 하였다.
18세기 중엽 독일의 웨스퍼가 개발한 금속 단추 제조 기술과 19세기 산업 혁명 이후 대량 생산으로 단추가 나오면서 평민들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변화되었다.
물레(13세기 이후)
물레는 인도에서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세의 갑옷
서양과 동양을 가리지 않고 병장기 중 갑옷은 대체로 가성비 싼 것을 제외하면 자비로 구입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중세 유럽의 갑옷은 신분과 재력으로 갑옷이 구분된다. 때문에 병졸들의 갑옷은 대체로 지급품인데다가 금속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이 보편적으로 철갑으로 무장하지 못한 것이 허다했다.
갑옷은 시대별로 세가지로 나눠진다. 중세 초기의 경우 반팔 티셔츠 형태의 쇠사슬로 만들어지거나 가죽끈으로 엮은 여러 개의 철편으로 만들어진 갑옷이 주류였으나 중세 후기로 갈수록 티셔츠 형태는 점차 도태되기 시작하였고, 대신 전신을 감싸는 형태가 나오게 되었다. 제철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13세기부터 14세기, 15세기 초반에는 점차 판금으로 갑옷을 만드는 이행기(Trasition Period)로 몸통을 제외한 전체 부위가 판금화를 거치게 된다. 몸통에 입는 흉갑의 경우에는 동양의 두정 갑과 동일한 구조의 갑옷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1420년대가 되면서 판금 갑의 초기형의 등장으로 판금 갑이 대세가 되기 시작되었고, 밀라노 양식과 고딕 양식의 등장으로 철의 대량 생산으로 이어집니다. 철의 대량 생산으로 인하여 판금으로 만들어진 투구와 흉갑이 더 널리 입혀졌습니다.
갬 비슨(Gambeson, 10세기)
갬비슨은 금속제 갑옷을 입을 수 없던 일반 병사들에게 유일한 방어구였다. 중세 유럽의 일반 병사들이 보편적으로 착용한 겁 옷으로, 고대 스키 타인들의 발명품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 리넨 갑옷이란 이름으로 전파된 바가 있었다. 갬 비슨은 여러 겹의 천을 겹쳐서 만든 갑옷으로 조선시대 지갑과 같은 원리입니다. 중세시기의 갬 비슨은 10세기의 오래된 것으로 유일하지만 이전에도 다 영한 형태로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 병사들도 입었으나 동시에 기사들에게는 갑옷 안에 입는 내갑의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내갑의로 화살촉이 갑옷을 관통할 때 치명상을 피하거나 아니면 둔기에 의한 충격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착용하였다.
잭 체인(Jack chain, 15세기)
방어구로 판금 갑옷이 유행한 시기에 등장하였는데 냉병기 전술이 절정인 시기에 발명되었다. 가장 중요한 급소 부위는 머리와 몸통 부위였으나, 그다음으로 팔 부위였으나, 팔 보호대였던 암 하네스가 비쌌기 때문에 저렴한 방어구로써 만들어졌다.
중세시대에 발전하기 시작한 의류기술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문화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교류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머물러 있기 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이제는 그로 인해 발전한 의복의 종류와 장신구등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다음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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