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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예 정보

고대 후기의 역사와 비잔틴 문화

by goodday25 202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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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시대에서 중세시대로 넘어가는 혼란의 틈에 비잔틴 문화가 들어가게 됩니다. 무리를 형성하는 시대부터 나라를 만들고 이룬 고대시대는 대부분 벽화나 그때 사용했던 토기들로 미루어 짐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대시대에도 스타일은 존재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고대 후기의 비잔틴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고 고대와 중세를 연결하는 스타일에 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고전 고대(Classical Antiquity)에서 중세(Middle Ages)로 넘어가는 시기의 서양사를 말하며, 지중해 지역와 유럽 본토의 시대 구분이다. 이 때를 고대 후기(Late Antiquity)라고 불립니다.

역사

고대 후기(Late Antiquity)는 서로마의 멸망 이후  콘스탄티노플 (현재의 이스탄불)이 비잔티움세계듸 중심지로 나타나게 되었다. 게르만족이 4세기경부터 6세기경에 걸쳐  여러 민족이 남유럽·서유럽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이것을 게르만 민족 대이동이라 부릅니다. 크게는 노르만인의 이동도 포함하여 11세기경까지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이동의 원인으로는 경지의 부족, 인구의 증가, 타민족의 압박 등으로 보여지지만, 대이동의 계기는 훈족의 서진(西進)이다. 좋은 기후와 비옥한 땅을 찾아서 약화되었던 로마 제국으로 침입했다. 게르만 민족의 수에비족은 이미 기원전 2세기 말부터 로마에 영내에 침입하였는데, 로마제국 시대에는 라인강에서 대치하였다. 민족 이동으로 그리스 정교를 신봉하는 동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가톨릭 교회와 제휴하는 중세 서유럽 세계의 형성을 촉진시켰다.

서로마 제국은 3세기 말에 이르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재건 개혁에도 불구하고 쇠퇴길로 걷게 된다. 토지는 일부 대토지 소유자에 독점되어 자유 농민과 중간층은 몰락하였으며, 인구는 감소되고 경제는 성장을 멈추었다. 로마군도 게르만 용병으로 무력화하고,  475년에는 동로마의 국경에 서고트족이 국경을 침입하자 일대 민족 이동이 나타나게 되었다. 침입한 서고트족은 아드리아 높을 전투에서 동로 마군을 격파하였고 서진하여 서로 마군을 격퇴, 이탈리아 반도로 남하하였다. 이렇게 ‘영원의 도시’ 로마는 410년에 함락되었고 게르만의 여러 부족들이 로마의 다른 영토를 차지하였다. 동고트·롬바르드 왕국(이탈리아), 반달 왕국(아프리카 북안), 부르군트 왕국(남프랑스), 서고트 왕국(에스파냐), 앵글로색슨 왕국(영국)등 서유럽의 여러 나라가 게르만 민족 이동으로 인하여 건국되었다.

동로마 제국은 6세기 초에 즉위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로마 제국의 재건을 희망으로 옛 로마의 영토를 차지하였고, 동로마 속에서는 로마법을 집대성하여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만들어 법제사상 큰 영향을 끼쳤다. 그 후 다시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까지로 줄었지만  서유럽과 중동아시아를 연결하는 문화적인 중개역을 담당하여, 동방의 문화적 전통 와 그리스를 융화하였고 계승하여 화려한 비잔틴 문화를 보이게 되었다

 

비잔틴 문화

콘스탄티노블(현재의 이스탄불)은 로마의 몰락 이후 비잔티움 세계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스, 중동, 로마, 동양의  문화가 제국에 들러와 융화를 이룬시대이기도 했다. 당시의 의복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 주는 것이었다. 지위가 높은 최고위층들은 화려한 무늬가 들어간 옷을 입고 보석과 실크로 만든 길고 풍성한 가운을 입었다. 황후는 사치스러운 드레스로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며, 값비싼 티리언 퍼플 (tyrian purple) 염료로 직물을 물들이고,금실과 보석으로 치장된 옷을 입었다. 황후의 의상은 로마의 토가를 본뜬 루스 한 로브차림에 허리에는 보석 박힌 타블리온(tabion장식 패널)으로 옷을 장식하고, 목 주변에는 장식 칼라를 사용하여 보석으로 장식하였으며 머리는 프로폴 로마(propoloma) 패드를 넣은 헤드 드레스를 쓰고, 카타세 이스타 (kataseista)또는 프라이팬 둘라(praipendula)로 장식하였습니다. 일명 프라이팬 둘라는 얼굴을 감싸며 흘러내리는 진주 장식이나 보석으로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황제도 아주 값비싼 티리언 퍼플 염료를 잔뜩 사용해서 염색한 긴망토를 걸치고 안에는 튜닉과 소매가 망토 밖으로 드러나게 입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망토는 특히 금사나 은사로 무늬를 넣은 타블리온(장식 패널)을 해서 걸쳤고, 망토의 테두리 전체에 보석이나 자수를 이용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황제와 황후는 이들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신발에도 자수장식이 들어가거나 자수와 보석, 진주로 치장한 구두를 신었다. 그 아래 귀족 여자는 실크 옷과 베일을, 남자들은 튜닉과 클로크를 입었는데 이것은 로마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가난한 노동계층 사람들은 단조로운 울 튜닉을 입었다. 남자들은 무릎길이로 입고 레깅스와 부츠를 착용하고 그 위에는 긴 클로크를 입었다. 달마 티콘(dalmatikon, 넓은 소매의 튜닉), 팔리움(pallium, 클로크), 샤쥐블(chasuble, 아우터 가먼트)등 몇 가지 의복은 그리스 교회와 가톨릭 교회의 베스트먼트(vestment)로 공인되기도 했습니다. 

 

 

비잔티움 스타일은 직조기술과 자수부분에서 화려함과 다양성을 모두 드러난 시대인 것 같습니다. 벽화를 보면서 현재에는 과하다 생각이 들 정도의 디자인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는데 소매 끝단과 로브의 밑단 부분에도 장식을 넣은 것은 화려하다 못해 과시의 극치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진주나 보석 등을 옷에 달아 자신을 과시했다는 사실도 놀라웠습니다. 지금도 비잔틴 스타일을 가미해서 나오는 디자인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가방이나 액세서리에 포인트를 준다면 지금도 이것들을 많이 응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일상에서 좀 더 다양한 비잔틴 스타일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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